오늘은 최근 한 스타트업 대표님과 나눈 이야기를 시작으로, 우리가 특허를 어떻게 바라보고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며칠 전, 막 시드 투자를 받으신 한 대표님께서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변리사님, 당근마켓이나 번개장터나 둘 다 중고거래인데 어떻게 둘 다 있죠? 얘넨 특허가 없나요?”
저는 이 질문을 듣고 잠시 멍했습니다. 너무도 당연하게 특허는 그렇게 넓은 범위의 독점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질문이야말로 많은 스타트업 대표님들이 가진 특허에 대한 오해와 궁금증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경쟁자의 시장 진입 자체를 막아버리는 강력한 ‘원천 특허’도 있습니다. 주로 신약 개발 같은 제약 분야에서 볼 수 있죠. (비아그라 특허가 만료된 후에야 수많은 복제약이 등장한 것처럼요.) 하지만 우리가 이야기할 ICT 분야, 특히 스타트업이 뛰어드는 시장에서는 그런 철벽같은 특허를 확보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바로 이 질문이 오늘 제가 글을 쓴 이유입니다. 특허가 실제로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이해하면 우리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과 기술을 어떻게 보호하고 경쟁 우위를 만들어나갈지, 즉 ‘특허 포트폴리오 전략’을 수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BM이 같은데, 당근마켓과 번개장터는 어떻게 공존할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의 BM을 ‘중고거래’라는 큰 개념으로 본다면, 이런 BM 자체는 특허가 되기 어렵습니다. 중고거래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너무나도 오래된 사업 모델이기 때문이죠. 특허의 기본 요건인 ‘새로움(신규성)’이 없습니다. 따라서 ‘중고거래 플랫폼’이라는 아이디어만으로는 특허를 통한 시장 봉쇄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어야 할까요? 이런 플랫폼 기업은 BM을 어떻게 특허로 만들 수 있을까요?
전략 1: BM을 뾰족하게 다듬어 ‘기술’로 특허화하기
‘중고거래’라는 넓은 개념 대신, “우리는 중고거래 문제를 ‘어떻게’ 다르게 풀 것인가?”에 집중하고 그 ‘어떻게’를 기술로 구체화하는 전략입니다. 당근마켓이 아주 좋은 사례입니다.
과거 당근마켓의 공개특허 중 ‘지역 기반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 및 시스템’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특허의 핵심은 기존의 ‘OO동’ 같은 고정된 행정구역 서비스의 문제점을 기술로 해결하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옆집인데 행정구역이 달라 거래를 못 하는 비효율을 다음과 같은 기술로 풀었습니다.
핵심 아이디어:
고정된 행정구역 대신, 실제 사용자 분포에 따라 서비스 권역(‘구역 노드’)을 실시간으로 바꾸자!
구체적인 기술:
– 지역을 일정한 크기의 격자(‘참조 노드’, 예: 육각형)로 나눕니다.
– 격자 내 사용자가 너무 많으면? 더 잘게 쪼개(분할) 서비스 범위를 좁힙니다.
– 반대로 사용자가 너무 적으면? 옆 격자들과 합쳐(그루핑) 서비스 범위를 넓힙니다.
– 여기에 거래 빈도, 교통량 같은 데이터를 더해 범위를 최적화합니다.
당근마켓은 ‘중고거래’가 아닌, 그들의 강점인 ‘지역 기반 중고거래’를 실현하기 위한 기반 기술을 특허화하려 한 것입니다. (비록 이 공개특허는 등록 절차를 밟지 않아 권리가 되진 않았지만, 그들의 초기 기술 방향성과 문제 해결 방식을 명확히 보여주는 훌륭한 예시입니다.)
전략 2: 경쟁 우위를 만드는 ‘기능’을 특허화하기
두 번째 전략은 우리 서비스를 경쟁사보다 더 편리하고, 안전하며, 매력적으로 만드는 ‘핵심 기능’ 그 자체를 특허로 확보하는 것입니다. 당근마켓의 등록특허(10-2463550)가 이 전략을 아주 잘 보여줍니다.
특허명:
“지역 기반 추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 및 시스템”
문제점:
기존 서비스는 최신순으로만 보여줘서, 내가 관심 있는 물건을 찾으려면 직접 검색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습니다.
해결책(특허의 핵심):
사용자의 과거 활동 데이터를 분석해, ‘당신이 가장 관심 가질 만한 게시글’을 예측하고 노출 순서를 바꿔주는 것입니다.
특허 기술:
1. 사용자 정보의 벡터화 및 업데이트:
장기간 활동 정보로 ‘사용자 벡터’를 만들고, 최근 활동 정보에 더 높은 가중치를 부여해 계속 업데이트합니다. (어제 명품 가방을 봤어도 오늘 캠핑 장비를 검색했다면, 캠핑 장비를 더 잘 추천해주는 식입니다.)
2. ‘예상 관심도’ 산출:
이 ‘사용자 벡터’와 ‘최근 게시글 정보’를 기계학습 모델에 입력해, “이 게시글을 클릭할 확률은 0.9″와 같이 구체적인 수치를 계산합니다.
3. ‘똑똑한 정렬’ 방식:
A. 관심도 순 정렬: 예상 관심도가 가장 높은 글을 최상단에 보여줍니다.
B. 추천 게시글 ‘끼워넣기’: 최신순으로 정렬된 글들 사이에, 관심도 높은 추천 글을 ‘미리 결정된 간격’으로 자연스럽게 배치합니다. 이는 “광고만 가득하네”라는 사용자 거부감을 줄여주는 매우 영리한 방식입니다.
이 기술은 ‘중고거래’ BM과는 직접 관련이 없지만, “내가 뭘 원하는지 나보다 더 잘 아는 플랫폼”이라는 결정적인 경쟁 우위를 만듭니다. 사용자의 탐색 피로도를 줄여 만족도와 체류 시간을 극대화하는 것이죠.
결론: 대표님의 아이디어를 ‘자산’으로 만드십시오.
이제 우리는 “내 아이템도 특허가 될까?”라는 막연한 질문에서 벗어나, “우리 비즈니스의 성공을 위해 어떤 특허가 필요한가?“라는 전략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즉, 등록 가능성을 점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경쟁 우위를 정의하고 그것들로 특허 포트폴리오를 채워나가는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이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보시길 바랍니다.
1. 우리는 기존의 문제를 어떤 ‘새로운 방식(HOW)’으로 풀고 있는가? 그 방식을 구체적인 기술로 설명할 수 있는가? (전략 1: 뾰족한 BM의 기술화)
2. 우리 서비스의 어떤 ‘핵심 기능’이 경쟁사보다 뛰어나 고객을 끌어올 것인가? 그 기능의 구체적인 작동 원리는 무엇인가? (전략 2: 경쟁 우위 기능의 특허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바로 우리가 확보해야 할 특허 포트폴리오입니다.
좋은 시장이라면 경쟁자는 특허가 있더라도 어떻게든 들어오려 할 것입니다. 특허 하나로 시장을 완전히 막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기술을 따라 하려는 경쟁자는 우리의 특허를 피해서 제품을 개발해야만 한다는 점입니다.
시장은 경쟁자와 공유하더라도, 특허로 지켜낸 ‘경쟁 우위’만큼은 결코 공유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스타트업에게 특허가 필요한 진짜 이유입니다.